그는 2004년 CBS에서 전국적으로 공모한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으로 선정되었다. 사회주의 정치인으로서 서스캐처원 주의 수상으로 1944년부터 1961년까지 재임하였으며, 1961년부터는 신민주당의 당수로서 1971년까지 활동하였다.
‘마우스랜드’는 생쥐들이 모여 사는 나라다. 생쥐들도 인간들처럼 그들의 지도자를 뽑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뽑은 지도자는 생쥐가 아닌 고양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비슷한 부분이다. 고양이를 뽑은 생쥐들은 결국 고양이로부터 억압과 유린을 당한다. 고양이는 애초부터 생쥐의 삶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안위와 힘의 유지에 관심이 있었다.

“이제 알 것이다. 고양이의 색깔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문제는 그들이 모두 고양이라는 점이다. 고양이 정부는 당연히 고양이들만을 돌볼 뿐 생쥐는 안중에도 없다.”
어느 날 이러한 부정과 부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한 생쥐가 이제부터라도 지도자를 생쥐가운데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쥐들은 그를 오히려 '빨갱이'라고 몰아세우며 감옥에 보냈다.

인류가 늘 역사를 보고, 배우며, 역사가 말해주는 정답을 보고 그것을 참고한다면 인류사는 이상적인 평화를 향해 상당부분 전진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역사는 또한 알려준다.
정의란 것이 무엇인가.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배려와 공존을 지향하는 자유가 아닌가? 원칙도 없고, 독재에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비상식이 상식이 돼버리는 현실이 슬프다. 더욱 슬픈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지도자를 향해 지지한다는 것이다.
최근 운동선수 출신 문 후보의 논문표절과 이화여대 출신 손 후보의 선거법위반, 필리핀에서 온 이 후보의 학력위조 등이 이슈다. 우리사회가 상식을 추구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들은 사죄하고 내려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오늘 더욱 화려하다. 원칙도 없고, 정의도 지키지 않은 그들은 신기하게도 하나의 무리에 존재하고 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에서 원칙과 정의를 지키지 않는 존재가 한 곳에 몰려있는지.
마우스랜드는 바로 토미 더글러스가 1962년 캐나다 의회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그가 생쥐를 비유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투표를 통해서 권력을 교체해도 일반 대중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정말도 청년실업이나, 자살하는 국민들의 정서나, 날로만 높아져가는 물가와 국방에 대해 진심으로 접근하고 해결하려 하는지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더글러스가 실시한 공중의료정책처럼 국민을 위한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으려면 고양이가 아닌 생쥐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의를 수호하고, 의로움을 지향하고, 부정과 부패를 증오하며, 공동체의 안위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지켜나가려는 사람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 선거에 정치에 관심 없다 하지 말고, 신중하게 누가 진정으로 국민을 대변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지향하고, 국민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고, 그 이상의 사랑을 실천하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를 뽑아야 국민의 정신건강은 더욱 좋아지며 국력이 강해지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방관자로 조롱거리가 될 것인지, 역사의 양심으로 신에게 자랑거리가 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해보자.
고양이는 언제나 생쥐를 잡아먹을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