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술의 기원 ♡
우리가 늘상 마시는 술에는 그 역사를 알수가 없어요
그러나 여러 가지 문헌을 볼때 그것은 이미 인류 역사의 시작전에 존재하고 있었고
인류와 함께 계속 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어요
이집트신화, 그리스신화, 로마신화, 고대중국신화 또 우리나라 건국신화에도
모두 술에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술이 인간의 역사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가를 알수 있지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Dyonisos)는 로마신화에서는
바코스(Bacchos)로 불리는 인물이지요
디오니소스는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와 그의 인간세상의 연인 세멜레의 아들인데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때 제우스의 부인 헤라의 질투로 어머니가 죽자 제우스의
넓적다리에 옮겨져서 여섯달 동안 자란후 태어났어요
로마신화의 바코스는 우아하고 여성적인 미남청년으로 묘사되며 포도나무와 송악
산양과 돌고래등이 그의 성스러운 동식물이라 했어요
그리구 구약성서에서는 노아(Noah)가 처음으로 포도주를 빚었다고 했지요
대홍수가 끝난후 노아가 정착한 곳이 아라랏산 근처인데 이곳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소아시아 지방으로 포도나무의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지요
또한 고대 중국 신화에서는 주나라 안왕부터 진시황때까지 240년간의
사실(史實)을 기록했다는 전국책(戰國策)에는 “옛날 황제의 딸 의적(儀狄)이
술을 맛있게 빚어 하(夏)나라의 우왕(禹王)에게 올렸더니 우왕이 이를 맛보고
감칠맛에 놀라 반드시 후세에 술로 나라를 망치는자가 있을 것이라 말하고
술을 끊고 의적을 멀리 하였다“란 기록이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고삼국사(古三國史)에 술에 얽힌 동명성왕의 건국신화가 있지요
천제(天帝)의 아들인 해모수가 하백의 세딸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인연을 맺고자 할때 미리 술을 준비하여 취하게 한다음 큰딸 유화와의 사이에서
주몽(朱蒙)을 낳게 하였지요
그가 바로 동명성왕으로 후일 고구려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와같이 술은 고대 신화에서부터 인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어요
그러나 술의 발생적 기원으로 본다면 그것은 인류의 역사 이전에 있었다고 보는
편이 보다 타당할것으로 생각 들지요
술은 당분이 많은 과일이 떨어져 썩어갈 때 공기중에 무수히 떠다니는 미생물중
발효를 일으키는 효모 이스트(yeast)의 포자가 번식하여 일으키는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효모가 번식하여 알코올 발효(Alcohol fermentation)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우선 효모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당분,단백질
그리고 소량의 무기질이 필요 하지요
그 다음 효모가 성장하는데 적절한 온도 조건과 적절한 산소 공급이 필수적 이지요
만약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 효모보다 박테리아의 활동이 활발하게 되면 부패가
일어나서 알코올 발효는 더 이상 진행될수 없어요
또 지나치게 공기의 유통이 잘되면 효모가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기 보다는 효모 자체의
번식만 활발하게 이루어져 알코올의 생성이 이루어 질수 없게 된다 하는군요
자연상태에서 이러한 알코올 발효가 잘 이루어 질수있는 조건으로는 당분을 다량 함유한
잘익은 과일이 낙과(落果)하여 모일수 있는 움푹파인 바위같은 곳이 있어야 하고
그 위로 많은 낙엽이 떨어져 공기를 차단할수 있는곳이어야 한다는군요
또한 직사광선이 쪼이지 않아야 하구요
일본의 스미스 세이이찌(淸水精一)라는 사람은 깊은 산속에 입산수도 하면서 원숭이들과
사귀게 되었는데 그 원숭이들이 무언가를 먹고 다른때와 달리 취한듯 노는것을 보고
자연 낙과한 포도가 발효되면 동물에게 즐거움을 주는 물질로 변하게 되는것을
알았다 하는군요
그러니까 술의 원조는 어쩌면 원숭이 인지도 몰라요
그럼 우리나라의 술의 기원은 언제부터 일까요?
역사적으로 그 기원은 알수가 없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에 중요한것이
된장 간장 김치 식혜 등 발효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발효로 만들어지는 술 또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것이라고 추정할수 있지요
그래서 부족국가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우리나라의 중요한 행사에서는 항상
술이 있었음을 알게 하는 기록 등이 남아 있어요
위지동이전에서는 예와부여, 진한, 마한 등의 여러 행사에서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며 옛 사람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 감각과 이성이 마비되어 황홀한 경지에
빠진것을 신의 경지에 이른것이라 여겼다 하는군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경사회였고 논밭에서 생산한 곡류로 술을 빚어 왔지요
그 때부터 이미 누룩을 빚은 법을 알게 되었으며 이런 기술은 일본까지 전해졌지요
백제시대 사람인 인번(仁番)은 일본에 누룩을 이용한 술빚기를 전파하여 주신(酒神)
으로 추앙 받았다는 기록이 있어요
이때는 아라비아의 증류기술이 전파되기 훨씬전이므로 모든 술은 도수가 높지 않은
발효주 였을것으로 추정 된다 하는군요
그 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 원나라의 양조기술이 도입되어 다영한 술이 만들어졌고
특히 증류기술의 도입으로 높은 도수의 소주(燒酒)가 만들어져 귀족들 사이에서
애용되고 소비 되었지요
특히 불교가 국교였던 이유로 왕실과 밀착관계에 있던 사원에서
술을 빚어 팔기도 했다고 하는군요
고려시대에는 청주(淸酒), 탁주(濁酒), 소주(燒酒) 등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술이
제조되었으며 그 원료로는 멥쌀뿐 아니라 찹쌀까지 이용하게 되었지요
그 외에도 법주(法酒), 과실주, 그리고 생약제재를 가미해서 만든 약용주와
초근목피를 첨가해서 그 향을 이용하는 가향주(佳香酒)가 만들어져
술의 종류가 다양해 졌음을 알수 있어요
그러나 고려 신우왕 때에는 “소주음용금지령”이 내려졌던 것으로 보아
높은 도수의 술이 주는 폐해를 우려했음도 알수 있지요
또 곡식의 대량생산이 불가능했던 좁은 농토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주식으로
해야할 쌀을 술을 빚는데 많이 소비하는 것에 상당한 우려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아무튼 아라비아 연금술사들의 의해서 만들어진 증류장치가 유럽으로 건너가서
위스키와 브랜디 등 높은 농도의 알코올을 탄생시켰듯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전통적 소주를 탄생시키게 되었지요
그 뒤 고려시대때부터 점차 발전하기 시작한 다양한 양조기술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다양해 지고 그 기술이 점차 고급화 되어서 우리 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지요
이때부터 누룩과 지에밥(속칭 고두밥) 그리고 물을 주 원료로 술 담금하는 일을
두 번이상 반복하는 중양주가 발전하여 점차 품질이 높아지고 고급화 되었어요
그 뒤 1905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한후 일제는 그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토지개혁과 주류개혁을 시작
하였지요
1907년에는 조선주세령을 발표하여 일반 가정에서 술을 빚어 마시던 것을 금지시키고
양조면허를 받은 일부 지주에게만 술을 빚을수 있는 권한을 주었지요
그리하여 조선시대까지 번창하였던 우리나라의 고유한 양조기술은 깊은 침체기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으며 각 문중마다 특색이 있었던 전통의 술맛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지요
이런 우리나라 토속주의 침체기는 광복 이후에도 장기간 계속되어 일반 대중이 즐기는
술의 취향을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게 되었지요
이런 상황은 1990년대에 들어서 정부가 전통주(傳統酒)를 적극적으로 부활시키려는
노력을 보일때 까지 계속 되었지요
광복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술의 관한 제도와 정책은 일제감점기의 주세법에 준한
것이 었으며 더군다나 계속되는 식량부족사태는 1960년대의 보리혼식과 무미일(無米日)
의 제도화와 함께 쌀 막걸니의 생산을 금지하는데 이르렀지요
쌀을 주원료로 하던 막걸니와 약주의 제조에서 쌀의 이용이 금지되고 옥수수 혹은 밀가루
등으로 대체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쌀로 빚던 약주나 증류소주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어요
이것이 당시 식량난이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보다도 더 강력하게
주류제조를 통제하는 제도였지요
이후 농업 증산정책과 연속되는 풍년으로 쌀을 완전히 자급자족 할수있게 되자
마침내 1977년 12월 8일부터 정부는 쌀막걸니 생산을 허용하였어요
그리하여 그때까지 14년 동안이나 맛볼수 없었던 흰 우유빛의 쌀 막걸니가 다시 등장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러는 동안 쌀로 만든 막걸니를 증류해서 빚었던 우리나라 전통소주는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고 그 자리에 값싸고 먹기쉬운 지금의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게 되었지요
그 뒤 과잉 생산되는 쌀의 소비촉진을 위하여 쌀을 원료로 하는 증류주 등을 다시
만들 수 있게 하였으나 장기간 맥주와 희석식 소주에 길들여진 애주가들의 입맛을
돌리기엔 역부족 이었지요
1980년대 들어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급격하게 양주시장이 개방 되었으며
스코틀랜드 등 외국의 위스키 원주를 도입하여 국내에서 블렌딩(blending)하는
회사가 생겨 났으며 1988년 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외국산 위스키나 브랜디(Brandy)
수입이 급격히 늘어 났어요
국내에서는 우리 전통 고유술에 무형문화재 지정을 하였으며 제조기능 보유자를
인간 문화재로 위촉 했지요
그리하여 사라져 가던 우리 전통 민속주가 화려하게 부활 하였으며 현재 전국에서
120여 종류의 전통 민속주가 생산되고 있다 하네요
그럼 한국의 전통술은 어떤것이 있을까요?
한국의 전통술은 탁주, 약주, 청주,소주로 대표 되지요
이 세 가지 가운데 제조방법으로 볼때 탁주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탁주에서 재(滓)를 제거하여 약주가 되었으며 이를 증류하여 소주가 만들어졌어요
1) 탁주 (막걸니)
오늘날에도 널리 애음되고 있는 막걸리인 탁주는 약주와 함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도시의 서민층과 농민에게까지 널리 기호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토속주이지요
탁주는 예로부터 자가제조로 애용되었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그 맛도 다양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대중주로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지요
탁주는 지방별로 대포, 모주, 왕대포, 젓내기술(논산), 탁배기(제주), 탁주배기(부산),
탁쭈(경북)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요
삼국시대 이래 양조기술의 발달로 약주가 등장했지만 탁주와 그리 큰 구별이 없었지요
같은 원료를 사용해서 탁하게 빚을 수도 있고 맑게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어요
고려시대 이래로 대표적인 탁주는 이화주(梨花酒)였지요
이 이름은 탁주용 누룩을 배꽃이 필 무렵에 만든 데에서 유래했으나 후세에 와서는
어느 때나 누룩을 만들었으므로 그 이름이 사라지고 말았지요
일반에 널리 보급된 탁주는 가장 소박하게 만들어진 술로서 농주로 음용되어 왔으며
탁주와 약주는 곡류와 기타 전분이 함유된 물료나 전분당 및 물을 원료로 했지요
여기에서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제성했는가의 여부에 따라 탁주와 약주로 구분되었어요
2) 약주
약주는 탁주의 숙성이 거의 끝날 때쯤 술독 위에 맑게 뜨는 액체 속에 싸리나 대오리로
둥글고 깊게 통같이 만든 ‘용수’를 박아 맑은 액체만 떠낸 것이지요
약주란 원래 중국에서는 약으로 쓰이는 술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약용주라는
뜻이 아니였으며 우리나라에서 약주라 불리게 된 것은 조선시대 학자 서유거(徐有渠)가
좋은 술을 빚었는데 그의 호가 약봉(藥峰)이고 그가 약현동(藥峴洞)에 살았다 하여
‘약봉이 만든 술’ ‘약현에서 만든 술’이라는 의미에서 약주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는군요
약주에 속하는 술로는 백하주, 향은주, 하향주, 소국주, 부의주, 청명주, 감향주, 절주
방문주, 석탄주, 법주 등이 있지요
이밖에 보다 섬세한 방법으로 여러 번 덧술한 약주에 호산춘, 약산춘 등이 있는데
‘춘(春)’자를 붙인것은 중국 당나라 때의 예를 본뜬 것이래요
그리고 비록 ‘춘(春)’자는 붙지 않았어도 같은 종류의 술로 삼해주, 백일주, 사마주
등이 있어요
3) 청주
청주는 백미로 만드는 양조주로서 탁주와 비교하여 맑은 술이라고 해서
이름이 ‘맑을 청’자를 써서 청주(淸酒)라 부르게 되었어요
청주는 음료로서 사용되지만 육류와 생선요리 등 각종 요리에 조미용으로도
사용되고 있어요
청주는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순수한 한국의 술이지요
일본 고사기(古史記)에는 백제의 인번(仁番)이 응신천황(應神天皇, 270-312년)때
일본에 건너가 새로운 방법으로 미주(美酒)를 빚었으므로 그를 주신(酒神)으로
모셨다고 전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말하는 미주(美酒)는 청주(淸酒)의 전신 이지요
고려시대 「동국이상국집」의 시(詩)에서는 “발효된 술덧을 압착하여 맑은 청주를
얻는데 겨우 4-5병을 얻을 뿐이다”라고 했고, 「고려도경」에서도
“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에서 다스리는데 청주와 법주의 두가지가 있으며 질항아리에
넣어 명주로 봉해서 저장해 둔다”라고 했어요
이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는 발효된 술덧을 압착하거나 걸러내어 맑은 술을 빚었고
이미 덧술법을 사용하여 알코올 농도가 높은 청주를 빚은듯 하다 하네요
우리나라에서 현대식 청주가 만들어진 것은 1900년 이후라 하는군요
4) 소주
소주는 오래 보관할수 없는 일반 양조주의 결점을 없애기 위해서 고안된 술로서
발효원액을 증류하여 얻는 술이지요
소주는 인도나 이집트 등지에서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이나 2,800년 전부터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아요
국내문헌에 의하면 600년전 중국 원나라 때 처음 생산되었다고 하는군요
이때는 감로(甘露) 아라키(亞刺吉)라고 불렀으며 이 술을 만주에서는
이얼키(亞兒吉)라고 하고 아라비아에서는 아라크(Araq)라고 했다 하네요
아라키라는 이름은 아라비아의 아라크에서 유래한 것이구요
우리나라에서 소주는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가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한 후 몽고인의 대본당이었던 개성과 전진기지가 있던 안동, 제주도 등지에서
많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하는군요
원나라가 고려와 함께 일본을 정벌할 때 안동을 병참기지로 만들면서 안동소주가
알려지게 되었는데 안동소주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하게 되었대요
당시 원나라는 페르시아의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세력이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도 미쳤지요
원의 이러한 세력확장에 따라 페르시아 증류법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래요
한반도에 들어온 소주는 지역마다 명칭을 달리했어요
개성에서는 ‘아락주’라고 했고 평북지방에서는 ‘아랑주’라고 했어요
경북과 전남 충북 일부에서는 ‘새주’, ‘세주’라고 했으며
진주에서는 ‘쇠주’ 하동과 목포, 서귀포 등지에서는 ‘아랑주’
연천에서는 ‘아래지’ 순천과 해남에서는 ‘효주’라고 불리었데요
고려시대 중국에서 전래된 소주는 오랫동안 약용으로 음용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야 ‘술’로서 일반인들이 마시게 되었으며 ‘약소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한반도에서는 평양에서 만든 ‘감홍로(甘紅露)’가 최초의 소주이고
‘재소주’(두번 증류하여 강도가 높은소주)는 태국으로부터 들어왔다고 전해
지고 있어요
그 외의 독특한 술로는 가향주(加香酒)가 있는데
술에 독특한 향을 주기 위해서 꽃이나 식물의 잎 등을 넣어 만든 술이지요
진달래꽃을 쓰는 두견주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화주(花酒)가 있는데
빚는 방법으로는 일반 처방에다 가향재료를 넣어 함께 빚는 것과 이미 만들어진
곡주에 가향재료를 우러나게 하여 빚는 가향 입주법이 있다 하네요
-* 언제나 기쁨주는 산적:조 동렬(일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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