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때 일제가 독립운동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탄압한 학살현장이다.
3월 10일경에 안종린·안정옥 등이 서울에서 독립선언문과 격문을 입수하고,
3월 25일에 뒷산에 올라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본 경찰이 무차별 사격과 매질을 가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는데,
이때 무참히 살해된 주민은 어린이를 포함하여 23명이었다.
일본군은 다시 마을을 다니며 민가에 불을 지르고,
이웃마을 고주리에서는 주민들을 마구 칼로 찔러 죽였다.
불탄 예배당터에는 순국기념탑을 세우고,
국·내외 관계자료를 모아 기념관에 전시해
국민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